미국여행

[힐링뉴욕] 맨해튼 아이리시 헝거메모리얼 Irish Hunger memorial, 보릿고개 넘기

force2004 2022. 4. 26. 12:35

배터리파크시티지역 고층주택가 사이에 이상한 형태의 건조물이 있다. 아이리스 헝거 메모리얼 Irish Hunger memorial 이라는 명칭이 붙어있다. 공원앞에 지어진 이 구조물은 생김새도 별나다. 미국은 과거 역사 속의 한 장면을 이런 기념물로 기억하고 후손들에게 유산으로 물려준다. 근처의 9/11메모리얼 처럼 19C 기아의 역사를 헝거메모리얼로 현재까지 그 의미를 남기고 있다. 우리나라도 과거 보릿고개를 넘었다는 말이 있다. 이를 통해 근대화로 비로서 선진국 대열로 진입했으니 과거의 고통은 현재의 찬란한 역사 한페이지에 묻어있지만, 이런 기억을 기념설치예술로 발전시켜 만들어 잘 남기지는 않는 것 같다

배터리 파크 시티의 표지판과 고층건물 사이의 기괴한 대형 조각 설치건물 같으면서, 과거의 유적을 이런식으로 세련되게 보존한다는 사실이 새삽 우리의 현실을 생각하게 한다. 근대화 속에 과거 대부분의 우리의 가치있는 역사적 현장이 너무 쉽게 사라지고 흔적조차 남지 않는 현실이 생각났다.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민족은 미래가 없다고 누가 그랬던가? 과거의 반성과 기억 속에 미래를 새롭게 설계하는 미국의 이런 태도가 오늘날 세계강대국으로 만들었으리라고 생각된다.

이 아일랜드 기념관은 2001년 공사를 시작하여 2002년 개관되었다. 1845년부터 1852년 동안 7년동안 백만명이 굶주려 죽었고 나머지 백만명에 달하는 주민들이 강제로 이주해야 했고 그중 많은 사람들이 뉴욕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했던 사실은 기억하자는 의미로 만들어졌다.

 
 

아일랜드 기근의 당시 현장으로 올라가는 길은 허드슨 강을 마주한 출입구를 통해서 이다. 손바닥과 손목을 생각나게 하는 형태로 헝거 메모리얼이 디자인 된 것이 특징이다.

 
 

현대의 고층건물과 19C돌담벽, 월드트레이드센터가 한 하늘에서 같이 의미를 떠올린다.

메모리얼 현장으로 들어가는 입구로 좌우 벽에는 당시의 증언을 메시지 형태로 남겨 놓았다.

 
 
 

좌우의 이 돌담벽은 아일랜드에서 가져온 1820년대의 돌과 식물들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이 설치물은 Vesey St와 North End Ave 에 위치해 있으며, 1820년대의 석조 오두막의 중심부를 본따고 있으며, 위쪽으로는 아일랜드의 시골풍경을 보여준다.

 
 
 
 

언덕 위로 올라오면 규모는 작지만 아일랜드 전원의 어떤 장소를 연상케하며, 주변의 높은 빌딩들과 묘한 대조를 이룬다.

 
 

여기 쌓여진 돌들이 한 지역에서만 온 것이 아니라 32개의 지역에서 날라온 것이며, 석재 오두막과 아일랜드의 거친 풍광, 그리고 전망대로 이루어진 파트는 좁은 공간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살린 예술적인 재구성으로 보인다.

이 정원 내부는 아일랜드 북부 코나트 습지에서나 볼 수 있는 경작하지 않는 감자밭과 식물들이 조성되어 있다고 한다. 이 두가지는 아일랜드 대기근의 메타포로서 의도적으로 배치된 것으로 보인다. 오늘날에도 전세계적으로 부분별한 도시화와 개발로 경작할 토지의 부족으로 기근이 생긴다는 것을 되세겨 준다.

 
 
 

오전 11시 부터 오후 6시 30까지 개방하며, 아일랜드 헝거 앱을 사용하면 자세한 세부 내용을 설명 들을 수 있다.

 
 

실제로 아일랜드 북부의 땅들은 농사를 짓기도 어려울 정도로 척박하고 돌들로 언덕을 덮고 있어, 여기에서 보듯 돌들로 집을 짓고, 도로 경계선을 만들고 살고 있는 모습들을 다큐로 볼 수 있다.

 
 

로어 맨해튼 도심 속의 풀들이 무성한 돌담길을 걸어보자, 아일랜드의 풍경을 잠시 상상하면서...

 
 

뉴욕은 전세계에서 많은 이주민들이 와서 이룬 도시인 만큼, 오늘날 관광객들은 구석구석 다녀 보면 의미있는 사소하지만 작은 유산 하나 하나가 이런 형태로 남겨지고 후손을 위해 존재하고 있다.

 
 

잘 못하면 도시의 흉물이 될수도 있고, 민원의 소재가 될 수도 있는 것들이 사회적 합의를 통해, 또 예술가의 손을 거쳐 새로운 설치 예술로 지역의 유적으로 재탄생되는 과정이 신기하기만 하다.

 
 

주변에 사는 농부들이 찾아와서 이 정원을 봄철에는 손질도 한다고 하는 것이 자발적인 사회의 단면을 본다. 마치 개발되지 않고 방치된 도심속 폐허 같이 보이는 언덕이 주변의 초현대식 공간과 이상하게 다양성을 존중하는 뉴욕시티와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곳에서 가장 높은 전망대에 올라오면 뉴저지 저지시티와 엘리스 섬의 자유의 여신상이 보인다.

총 면적이 2,023평방제곱, 612평에 불과한 미니 유적지 이지만 도심 속의 폐허같은 이런 공간이 로어맨해턴의 한 모퉁이를 차지한다는 경이롭다.

 
 
 
 

뉴저지의 저지시티와 여객터미널이 산책로와 함께 바로 아래에 높지는 않지만 전망을 할 수 있도록 잘 꾸며져 있다.

 
 
 
 
 
 
 

돌에 새겨진 Armach 아마는 북아일랜드 아마주의 주도로 인구 1만4천여명의 아일랜드 교회의 수도이다.

 
 
 
 
 

헝거 메모리얼 나와 허드슨 강가로 나온다. 재미있는 사실은 뉴욕이 네덜란드의 식민지 뉴암스테르담이었을 당시에는 허드슨강이 이스트리버, 사우스 리버(현재의 델라웨어 리버)와 구분하기 위해 노스 리버North River라고 불리웠다.

 
 

멀리 자유의 여신상이 이곳 배터리파크 시티 공원 강변에서 잘 보인다.

 
 

뉴저지행 순환선 보트와 페리들과 바지선을 끄는 예인선들이 이곳에서 가장 흔한 작업선들이다. 도시가 형성되기 위해 프로젝트가 실행될 때 현재의 허드슨 강을 따라 이루어졌다고 한다.

바지선에 실린 시멘트와 돌덩어리들, 각종 연료들이 정유선에 실려서 허드슨 강을 거슬러 올라갔다. 전세계에서 대형화물선들이 북쪽의 알바니Albany를 향해 기름과 당밀, 코코아 콩, 건축을 위해 석고를 만드는데 광물을 선적하고 이곳을 지나갔다.

 

노스리버 이며 현재는 허드슨 강은 과거 뉴욕에서 가장 바쁜 해상

로였다고 한다. 현재의 지점에서 뉴저지까지는 4/3마일의 거리이고, 수심은 썰물시 평균 50피트(15.24미터)라고 한다.